비산동성당 교우님들의 갈매못 성지로 순례를 하다.
남성,여성소공동체 봉사자 모두 위령성월을 맞이하여
버스3대로 보령 갈매못 을 다녀 왔습니다.


갈매못성지
갈매못성지 지킴이 이득규 바오로 신부님이 계신 갈매못 성지는
유일한 바닷가 성지로써 아름답기로 유명한곳.
이득규 바오로신부님 말씀으로는 한국성지 가운데에서 아름답기로 말하면
3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
풍광을 자랑하고 싶은
곳 이기도 하답니다.
넓고 푸른 바다 와 갈매기들이 노는 모습에 눈을 빼앗기도 하고
저녁에는 해넘이의 장엄한 모습에
마음마저 빼앗기기도 한답니다.
갈매못은 渴馬淵<갈마연>에서 온 말입니다.
즉 목마른 말에게 물을 먹이는 연못이란 뜻이겠지요.
갈증을 채워주는 생명의 물이 있는 곳.
갈매못 성지가 아름다운 바닷가이기
때문에 잘못함 성지관광이 될 수 있습니다.
눈으로 보면 관광이고 마음으로 보는 것은 순례라고 했습니다.
성인들과 순교자들의 삶에 깊이 머무르면 머무를수록
성인들의 전구와 통공을 누리실수 있도록
성인들의 삶을 영의 눈으로, 마음으로 바라봅시다.
그러시면 순례의 여정이 새로운 이정표가 될 거랍니다.
오천항에는 군선이 100여척이 정박하고 수군3,000명이 항상 주둔하던 군항이었으며
수군의 훈련장이 형장으로 선택 되었는데 그곳이 바닷가가 있는 갈매못 성지라고 샤를달래 신부의‘한국천주교회사’에 기록되어 있다.
성지의 첫 발견은 부여 금사리 쇠양리 본당 주임신부이었던 정규량<레오>신부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순교현장을 발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.
1925년 정신부는 공주본당 최말구신부와 괴산 높은 다랑이 주임신부 윤 바오로 신부 와 함께갈매못 순교현장을 발견 한다.
정신부는 처형된 다섯 성인의 시신을 몰래파서 홍산지방 석죽골로 이장한 이 바오로와 그 조부 이 바오로, 중백부 지수씨, 부친 힐라리오씨가 공소에 생존해 있기에 이들의 도움과
목격증인으로서 고중해준 편웅택씨 이조웅씨 그리고 김순경씨와 함게 성인들의 머리가 걸렷던 장깃대가 세워졌던 자리와 참수하던 자리 그리고 임시로 매장했던 새 구덩이를 확인햇다.
갈매못이 형장이 된이유는 첫째 외연도는 보령시에 속해있는 70여개의 섬들중 가장멀리 떨어진 섬으로 기해박해때<1839년>에 엥베르, 모방, 샤드탕 신부 등 3명의 프랑스 선교사들을 살해한 책임을 묻는 편자가 담긴 상자를 남겨놓고 돌아 간적이 있었는데
이 사건을 조정에서는 조선의 영해침범사건으로 간주하여 당시 옥주에 있던 김대건신부의 처형을 앞당겨졌고 1866년 3월 홍선대원군이 서양오랑캐를 내친다는 의미로 세실함장이 침범했던 외연도에서 가까운 오천의 수영을 택하여 안토니오다불뤼주교를비롯,오베드로신부,위앵민 루카신부, 황석두루카, 장주기요셉 등 54명을 끌고 와 외연도를 바라보고 목을 쳐서 처형하게 하게하였던 것이다.
두 번째는 무당의 훈계로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250리밖 인 충청수영인 이곳으로 보내 군문효수하라는 명을 내려졌던 것.
내용은 갈매못 홈페이지 발취-
우리 안양 비산동 성당형제반 과 소공체봉사자 약100여명이 아침 일찍
비산동을 출발하여 11시30분미사에 맞추어 십자가에 길 기도를 드리고
본당으로 향하였습니다.
갈맷못 순교성지에 이날 참석한 순례자들은 무려 600여명
날씨는 그리 좋지않은 듯 미사도중 추위에 떠는 순례자가 많았습니다.
바람과 낮은온도에 체감온도가 상당히 추웠습니다.
일부는 본당안 일부는 추운 밖에서 미사는 진행되었지만
이득규<바오로>신부님의 힘찬 강론말씀으로 모든 추위를 이기는 은총을 받았습니다.
기억에 남는 말씀“눈우로 보면 관광이고 마음으로보면 순례” 지금도 이 말씀을 잊지 못합니다.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
부동산천왕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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